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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탑리 오층석탑(국보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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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부엉이 2009. 8. 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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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 탑리 오층석탑(義城 塔里 五層石塔)


소재지 :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1383-1
국보 77호

 

의성군 탑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이다.

낮은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전탑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 기둥과 모서리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 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분황사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의성 탑리 오층석탑(義城 塔里 五層石塔)은 시내에 자리잡고 있어 현재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옛모습을 많이 복원했다는데 일제 강점기 때 복원비 거출자 이름을 탑 뒷면에 음각으로 새겨두었다.

세월이 흐른 뒤 후손들은 그 이름을 지우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임진왜란 때 빙산사지 오층석탑의 감실안에 있던 황금불상도 가져가는 이들이 왜? 굳이 이 탑의 복원비를 갹출해내고 탑에다가 이름을 새겼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 저들이 훔쳐가고 저들이 보수해주는양 인심을 쓰고 돈은 양민들이 내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야시(여우)가 챙긴 셈이다.

복원명목으로 탑을 뒤져서 묻어둔 진신사리 보물을 찾으려던 짓은  아니었을까?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도 텅 비었다.

빙계계곡을 찾았더니 빙혈앞에 의성 빙산사지 5층석탑의 감실불좌대가 있는 것 아닌가?

불상은 도둑맞고 좌대라도 옮겨와 모신 것이다.  감실안이 텅 빈 연유가 유독 불상 하나만 손대지 않았을 것이다.

 

 

불상은 어디로 사라지고 텅빈 감실

 옛날 사진을 찾아 탑의 원래 모습을 대조해보며 관리를 한다. 

 해설사의 고증에 관한 설명

 

 

 

문화재 바로곁에는 예배당이 세워져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옛사진관 그대로라고 젊은이들은 신기해했지만

국보급 2km반경내에는 증축이나 개축에 많은 제약을 받는 게 현실이다.

당사자인 그들에겐 막상 삶의 아픔이다.

 

 문화재, 주변은 개발행위가 제한된다.
문화재보호구역이란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 지정문화재의 점유면적을 제외한 지역으로서 당해 지정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 구역을 말한다.최근 소득증가와 국민의식의 향상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새오워져 문화재 인식이 높아졌고 따라서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관할청에서 구역내 행위제한 등을 알아보고 토지의 매수를 결정해야 한다.

 탑리 오층석탑에서 바라본 금성산

지금은 숱한 전신줄이 얼켜서 시선을 훼방놓지만...분명 오층석탑의 좌청룡이다. 

 

 금성산은 의성의 명산으로 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해발 531m의 국내최초 사화산으로 태백산 맥 남쪽 일부이다. 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시대에 조성한 길 이 2,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산성을 따라 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이 있으며 해발 671m의 비봉산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금성산은 산정에 무덤을 쓰면 석달 동안 이 지역에는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운수 대통하여 큰 부자가 된다는 전설을 간직한 영산으로서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 수정사와 산운 대감마을을 함께 둘러보며 등산하기에 좋은 곳이다.

 

■ 연락처 : 금성면사무소 054) 834 -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