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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선비화

여행기

by 낮부엉이 2010. 9. 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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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은 의싱대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고려 건축의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길게 뻗은 처마와 나즈막하고 단아한 모양새는 그 기품을 말해준다(국보 제 19호)

무량수전< 無量壽殿 >에 비해 기둥의 배흘림이 약해졌고,

주두< 柱頭 >와 소로< 小累 >의 굽은 직선< 直線 >이며 굽받침이 없고, 공포< 공包 >와 가구< 架構 >의 수법은 간략하다.

구조양식< 構造樣式 >으로 보아 무량수전보다 훨씬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지정
국보  제19호 | 1962.12.20 지정
시대
고려시대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위치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51 (1동)
소개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또한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도 있다.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 21년(1490)과 성종 24년(1493)에 다시 고쳤다.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무량수전(국보 제18호)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 건물 안쪽의 좌우에는 사천왕상·보살상 등 고려 후기에 그려진 벽화가 있었다. 이것들은 고려시대 회화 가운데 매우 희귀한 것으로, 고분벽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그림 중 하나였다. 지금은 보호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으며, 원래 벽화가 있던 자리에는 본떠 그린 그림을 놓아 당시 벽화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다.


부석사< 浮石寺 >를 창건< 創建 >한 의상대사< 義湘大師 >(625∼702)의 진영< 眞影 >을 봉안< 奉安 >하고 있는 곳으로 고려< 高麗 > 우왕< 禑王 > 3년(1377)에 건립< 建立 >되었고, 조선< 朝鮮 > 성종< 成宗 > 21년(1490)에 중수< 重修 >되었으며 동< 同 > 24년(1493)에 개채< 改彩 >되었다. 이 건물은 주심포양식< 柱心包樣式 >에 맞배집으로 무량수전< 無量壽殿 >에 비해 기둥의 배흘림이 약해졌고, 주두< 柱頭 >와 소로< 小累 >의 굽은 직선< 直線 >이며 굽받침이 없고, 공포< 공包 >와 가구< 架構 >의 수법은 간략하다. 구조양식< 構造樣式 >으로 보아 무량수전보다 훨씬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건물 내부< 內部 > 입구< 入口 > 좌우< 左右 >에 제석천< 帝釋天 >, 범천< 梵天 >, 사천왕상< 四天王像 >의 벽화< 壁畵 >가 있었는데 이들은 고려시대의 회화사상< 繪畵史上 > 희귀한 것이며, 고분< 古墳 > 벽화< 壁畵 >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彩色 >그림 중 하나로서 지금은 무량수전 내에 보존< 保存 >하고 있다.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국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이 있다.


 사천왕상< 四天王像 >의 벽화< 壁畵 >

 

입구< 入口 > 좌우< 左右 >에 제석천< 帝釋天 >, 범천< 梵天 >,  

 이들은 고려시대의 회화사상< 繪畵史上 > 희귀한 것이며,

고분< 古墳 > 벽화< 壁畵 >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彩色 >그림 중 하나로서 지금은 무량수전 내에 보존< 保存 >하고 있다.

 현재는 이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내어 안전장치를 한 후에 부석사 보장각 안에 보관하고 있다.  보는 이 그림은 모사본!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

앞처마보다 뒷처마가 더 긴것이 특이함

출입문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국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 나무는 골담초라고 불리는 흔한 나무지만 큰스님들이 정진하시던 곳이니 그 영험한 기를 받아보고자
선비화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국각지에서 이 나뭇가지를 꺽어 다려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에 선비화가 수난을 면치 못하니 철조망을 대었다 한다.

  의상대사를 위시하여 큰스님들이 정진을 하던 곳이라 부석사에서 제일 기가 쎈 곳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서다.

 부석사의 부석이 있는 길로 내려서면 탑이 하나 있는데...그 탑위로 올라가보면 (일부러 올라가야 보임)

만들어 놓은 둥근 돌이 세개가 있다.

부석사가 앉은 산이 봉황을 닮아 봉황산이라고 부르는데 그 봉황을 날아가지 못하도록 이렇게 알을 만들어 놓았다 한다.

소백과 태백의 기를 받은 영주 부석사의 절터!

그중에 보물인 조사당!

조사당 사천대왕 벽화도 떼내어 무량수전에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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