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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말 바로쓰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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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부엉이 2005. 7. 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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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계속되는 자료는 이인섭과 심영자 공저 『우리말 고운말1, 2』를  

정리하여 자료를 일부 편집하였습니다


 

우리말 바로쓰기 1

 

'가게'인가 '가개'인가

 

자그마한 규모로 물건을 벌여놓고 파는집을 가게라고 합니다. 가게'는 원래 한자말 '假家'로부터 온 말입니다. '가가는 임시로 지은 집이란 뜻인데, 옛날에 거리에 임시로 지은 집에서 물건을 판 데서 연유합니다. 일반인에게도 물건을 팔았지만, 주로 관청에 물자를 공급하던 상점으로 가장큰 것은 전(廛), 그 다음이 방(房), 그 다음이 가가(假家), 제일 작은 것이 在家ㅇ입니다. '전'은 종로에 있던 선전(繕廛)·면포전(綿布廛)·면주전(綿紬廛)·지전(紙廛)·저포전(苧布廛)·내외 어물전(內外魚物廛)을 이르는 말이고, '재가'는 위의 육전에서 파는 물건을 자기집에서 팔던 일을 가리킨 말입니다.

어떻든, 이 '假家'가 오늘날은 '가게'로 변했는데, 요즘 이것을〔가개〕로 잘못 발음하는 일이 많습니다. 〔ㅔ〕는 비원순전설중모음이고,〔ㅐ〕는 비원순전설저모음인데, 이 두 음은 젊은 층에서, 그리고 경상도분들에게서 잘 구별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ㅔ〕와〔ㅐ〕가 혼동되는 예들을 살펴보시겠습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동네 어귀에 구멍가게가 하나 생겼습니다.
(여) : "그 가게 생긴 지 꽤 여러 날 되었는데, 오늘에야 아셨어요?"
(남) : "구멍가게치고는 물건도 상당히 많고, 정리가 잘 되어 있던데."
(여) : "그 주인 아줌마가 아주 친절하고, 구색을 맞추려고 애쓰니까 장가가 잘될거예요."

※ 여러분 잠깐만! ※
몹시 개으른 모양을 '개을러빠지다' 또는 '갤러빠지다'라고 하는데, 옳은 발음인지요?

옳습니다. '개으르다'는 '게으르다'의 작은말이며, '갤러빠지다'는 '게을러빠지다'의 작은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준말이 '갤러빠지다'입니다. '개으르다'의 준말은 '개르다'이기 때문에 '갤러'로 활용합니다.

 

'가든지 말든지'인가 '가던지 말던지'인가

 

'가든지 말든지'나 '가든지 오든지'나 모두 선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행위자가 어떤 행위를 하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다는 태도도 있고, 어떤 행위를 해도 좋고 다른 행위를 해도 좋다는 선택의 뜻도 있습니다.

'-든지'가 줄어든 것에 '-든'이 있습니다. '가든 말든'. '가든 오든'이 그것입니다. 이 '-든'이나 '-든지'는 용언의 어간 다음에만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언 다음에 오는 조사로도 쓰입니다. "배든지 사과든지 마음대로 먹어라.", "나든 너든 둘 중의 하나는 가야 한다." 처럼 쓸 수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든'이나 '-든지'를 '-던'이나 '-던지'와 구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집이 컸던지 작아던지 생각이 안난다."에서처럼 '-던지'는 과거의 일에 관련된 것이지, 선택이나 상관 없음을 나타내는 어미가 아닙니다.

※ 대화(주객간) ※
(여) :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빵이든 과자든 좀 잡수세요."
(남) : "하던 걸 마저 하고 먹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여) : "아까부터 그렇게 말씀하더니만 아직도 안 잡수셨기에 하는 말입니다."
(남) : "그새 그렇게 시간이 지났던가요? 그럼, 잠시 쉬기로 하지요. 아까 먹던 술이 남았으면 한 잔 더 주십시오."

※ 여러분 잠깐만! ※
'-어도'나 '-아도'보다 더 세게 가정의 뜻을 나타내는 어미 '-더라도'나 '-더라손치더라도'에는 과거의 뜻이 없으니까 '-드라도', '-드라손치드라도'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비난을 받더라도 나는 신념에 살겠다.'와 같은 경우 '받더라도'를 흔히'받드라도'로 발음하는 일이 있습니다. "빠르다손치더라도 제트기만큼이야 빠를라고." 할 때 역시 '빠르다손치드라도'로 발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택이나 무관의 뜻을 지닌 '-든지'를 제외하고는 '-더'형으로 통일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라도', '-더라손치더라도'라고 해야 옳습니다.

 

'가미'인가 '개미'인가

 

음식 맛을 나타내는 말이 국어에 크게 발달되어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달고, 쓰고, 짜고, 싱겁고, 맵고, 시고, 텁텁하고, 개운하고, 떫고 등이 다 맛을 나타내는 말인데 그들의 대부분은 어감에 따라 수많은 유의어들을 갖고 있습니다. 예컨대, '쓰다'같은 경우 쌉쌀하다, 씁쓸하다, 쌉싸래하다, 씁쓰레하다, 쓰디쓰다, 씁쓰름하다, 쌉싸롬하다 등이 있고, '시다' 도 시금하다, 시큼하다, 새금하다, 시금털털하다, 시디시다 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맛의 정도는 사람의 주관과 의도에 따라 그 차이가 많아 듣는이 역시 자기 나름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수많은 유의어로 표현된다는 점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맛을 나타내는 말에 '개미가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나이 좀 드신 분들이 흔히 쓰는 말로는 산뜻한 맛이 있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담백하면서 감칠 맛이 있다든가, 텁텁한 기운이 없이 산뜻하게 맛있다든가 할 때, 특히 국물이 있는 음식에서 그런 맛이 느껴질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바른 말은 '가미가 있다'입니다. 아름다울 佳(嘉)자와 맛 味자가 결합된 단어인데, 그것이 ㅣ 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개미'가 된 것입니다. 마치 '자미 있다'가 '재미 있다'가 된 것과 같습니다. '가미'가 '개미'로 변환 것은 '개운하다'란 말의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텁텁하다'의 반대말인 '개운하다'와 '가미'가 산뜻한 맛이란 점에서 공통되기 때문입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이 생선 매운탕이 아주 가미가 있는데 그래. 이게 무슨 생선으로 한 매운탕이오?"
(여) : "그게 조기 매운탕이라는 거지요. 부세로 살까 하다가 큰맘먹고 참조기를 샀지요."
(남) : "참조기면 꽤 비싸겠는 걸. 그건 어떻든, 당신 매운탕 솜씨는 알아줘야겠는데. 개운한 맛이 일품이야."
(여) : "칭찬 그만 하시고 어서 맛있게 드세요. 시간이 지나면 가미가 덜해질지 모르니까요."

* 여러분 잠깐만! *
'자미'가 '재미'로 된 것은 표준어로 인정하면서 '가미'가 '개미'로된 것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미'는 자양분이 많고 좋은 맛이란 원뜻에서 변하여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흥취란 뜻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표준어로 인정했지만, '가미'는 그와 같은 의미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개미'를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갈매기빛'과 '쪽빛'

 

'갈매'란 갈매나무의 열매를 가리키기도 하고, 짙은 초록빛 즉, 심록색(深綠色)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팥알만큼씩 둥글둥글한 갈매나무 열매가 갈매빛 염료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갈매나무는 골짜기나 개울가에 흔히 자라며, 키는 2m쯤 되는 작은큰키나무입니다. 5월에 꽃이 폈다 지면 열매가 열려 9월에 검은 빛으로 익게 됩니다.

'쪽'이란 한해살이풀은 밭에 재배하는 작물인데, 그 잎에 남빛 색소인 인디고(indigo)가 들어 있어 염료로 쓰입니다. 한자말로는 藍 또는 木藍이라고 합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날 때 出藍之材 란 말을 흔히 쓰는데 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에서 생겨난 말입니다(靑出於藍而於藍, 혹은 靑出於藍而碧於藍).

'갈매빛'과 '쪽빛'이란 말이 들어가 있는 詩句를 한 연씩 읽어 보십시오.

가난이야 한낱 襤樓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靑山이 그 무릎 아래 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서정주 : 無等을 보며)

창망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리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유치환 : 울릉도)

* 대화(부부간) *
(여) : "이 시에 그려진 빛깔이 무슨 빛깔인지 맞혀 보세요. '화면에 문지른 짙푸른 색깔에 묻혀 깔먹는 山家 . 바닷속의 숨가쁜 더위가 오수에 졸고 있다.'"
(남) : " 그건 박남수씨의 오수란 시가 아니오? 그거야 녹음이 우거진 거니까 갈매빛 아니겠소?"
(여) : "짙푸른 녹음의 갈매빛과 바닷속의 심록색을 비교한 것은 아주 뛰어난 관찰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남) : "물론 뛰어난 관찰이지. 먼 바다가 쪽빛을 띤 듯하지만, 그 물속은 실은 갈매빛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거든."

* 여러분 잠깐만! *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난 것을 나타낼 때 '청출어람'이라고 하는 것처럼 '자식이 아비보다 뛰어난 것'을 나타낼 때 쓰는 비유가 있을까요?

아비보다 낫다(勝於父) 란 것을 나타내는 속담으로 '개천에서 용났다.'란 것이 잇습니다. 미천한 가문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왔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荒山出俊鳥, 荒野出俊馬 도 다 같은 뜻으로 쓰는 말입니다.

 

'강남멋쟁이'인가 '강남멋장이'인가

 

요즘 유행하는 가요 가운데 '강남멋장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네온이 꽃피는 강남의 밤거리, 장미 한 송이 손에 들고서 노래하는 강남멋장이"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아서 많이 부르는 노래입니다만, 가사 중에 '멋쟁이'를 '멋장이'라고 부르는 게 좀 아쉬운노래입니다. 전에는 '멋장이'를 표준어로 삼았던 말입니다만, 새 표준어규정에서는 장인(匠人)의 뜻이 없을 때는 ㅣ모음 동화된 형태의 '멋쟁이'를 표준어로 삼았기 때문에 '강남멋장이'가 아니라 '강남멋쟁이'라고 해야 바른말입니다.
가수가 노래하면 수많은 사람이 따라 부르고, 그리하여 얼마 안 가서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는 게 대중 가요이므로, 가능한 한 표준어로 보급하는 게 바람직한 것입니다. 특별히 향토적 정서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특정 방언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표준어를 구사하는 게 옳은 일이라하겠습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이웃집 벽에 올린 담쟁이가 금년엔 꽤 많이 퍼졌던데 그래."
(여) : "김선생님이 얼마나 정성을 들이신 건데요. 담쟁이뿐인 줄 아세요? 골목쟁이에도 채송화를 아주 예쁘게 가꿔 놓으셨어요."
(남) : "회사 일에 바쁜데도 틈틈이 꽃을 가꾸는 걸 보면 보통 멋쟁이가 아니군 그래."
(여) : "생활을 풍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옷 입는 모습도 진짜 멋쟁이던걸요."
(남) : "당신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으니, 저녁에 술이나 한 잔 살 줄 아는 멋쟁이 좀 되어 보라고 해야겠구려."

* 여러분 잠깐만! *
속담에 "장꾼은 하나인데 풍각쟁이는 열둘이라." 는 것이 있습니다. '풍각쟁이'가 옳을까요, '풍각장이'가 옳을까요?

'풍가쟁이'가 옳습니다. 이 속담은 여러 사람이 모여 들어서 저마다 적당한 구실을 붙여 한 사람으로부터 돈이나 물건을 받아갈 때 쓰는 말입니다. 즉, 장꾼을 모아 놓고 풍각쟁이, 거리의 음악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풍류 소리를 내고 돈을 얻는것인데, 구경꾼보다 풍각쟁이가 더 많으니까 여러 사람이 한 사람으로부터 돈이나 물건을 받아가는 형국이 된 셈입니다. 그야 어떻든, 이 속담에 나오는 풍각쟁이는 전문적 음악인이 아니기 때문에 '풍각쟁이'라 함이 옳습니다.

 

'개꼬리'와 '게꽁지'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본바탕이 좋지 않은 것은 아무리 하여도 그 본질이 좋게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쓰는 것입니다. 황모라는 것은 족제비 꼬리털인데 붓을 매는 데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의 꼬리털로는 아무리 해도 붓을 맬 수 없으니까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되지 않는다.'는 속담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흰 개꼬리 굴뚝에 삼 년 두어도 흰 개꼬리다.'라는 속담도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개꼬리'는 '개꽁지'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꼬리'는 길짐승에게 쓰는 말이고 '꽁지'는 날짐승에게 쓰는 말이기 때문에 '개꽁지'라고 하면 틀리게 됩니다. 반대로 '새꼬리'는 틀린 말이고 '새꽁지'가 옳은 말입니다. "꽁지 빠진 새처럼 추레하다."같이 쓰입니다.
날짐승이 아니지만 '게'에도 꽁지를 씁니다. '게꽁지' 역시 '게꼬리'라고 하면 틀린 말이 됩니다. '게꽁지 만하다'는 것은 아주 짧아서 거의 없다는 뜻으로 쓰는 말입니다. '노루꼬리 만하다'도 같은 뜻의 말입니다. 노루꼬리는 흔적만 있을 뿐 없으며, '게꽁지'는 흔적도 없기 때문에 이런 뜻으로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꽁지 만하다'를 '게꼬리 만하다'라고 말하거나, '노루꼬리 만하다'를 '노루꽁지 만하다'라고 하면 역시 틀린 말이 됩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일이 도리 듯 될 듯하다 안 되고 마니, 이게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르겠네. 내 재주가 게꽁지 만해서 그런가?"
(여) :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밑천이 짧아서 그런 거 아니어요? 애초부터 노루꼬리 만한 돈으로 시작한 게 잘못일 거예요."
(남) : "이건 돈의 문제라기보다는 식견과 정성의 부족 때문인 것 같소.
다시 한번 해 봐야겠소."
(여) : "蘇若蘭의 문견이라도 있어야 도와드릴 텐데, 그렇지도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군요."

* 蘇若蘭 : 옛날 중국의 聞見 넓고 글 재주가 있었던 賢妻. 回文詩를 지어서 싸움터에 나간 남편을 무사히 돌아오게 하였음.

* 여러분 잠깐만! *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되지 않느다."처럼 아무리 해도 본바탕을 바꿀 수 없다는 속담으로 어떤 것이 또 있을까요?
앞에서 설명한 것 이외에, "오그라진 개꼬리 대봉통에 삼 년 두어도 아니 펴진다.", "승냥이는 양으로 변하지 않는다." 등이 있습니다.

 

'경위'인가 '경우'인가

 

엉클어진 일의 내용에서 가려내는 옳음과 그름을 '경위'라고 합니다. "경위가 밝다.", "경위가 바르다.", "경위를 따져가며 타이른다."처럼 쓸때의 '경위'입니다. 이 '경위'는 한자로서 涇渭라고 쓰는데, 중구의 經水의 강물은 탁하고 渭水의 강물은 맑아서, 맑음과 흐림의 구별이 뚜렷하다는 데서 사리의 옳고 그름을 가라 낸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말입니다.

'경위'는 한자로 經緯라고 쓰는 것도 있습니다. 날과 씨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일이 진전되어 온 경로나 경과를 나타내는 말로 쓰리기도 해서 앞서 말한 涇渭와 다소 혼선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경위나 들어봅시다.", "어떻게 해서 이리 되었는지 경위나 알아봅시다."처럼 씁니다. 그러나 이 두 말은 소리는 같지만 어언상으로 다른 말이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경위'는 변해서 '경오'로 많이 쓰입니다. "경오가 밝다", "경오가 그렇지 않니?"처럼 쓰이는데, 요즘에는 '경우'라고 하는 일이 흔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전에서는 아직 '경우'는 인정하지 앟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조건 아래서의 형편이나 사정을 나타낼 때의 '경우'와 복잡한 내용의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때의 '경위'혹은 '경오'는 구별해서 사용하여야 하겠습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당신은 화도 안 내고, 경위를 따져가며 애들을 순순히 잘 타이르던데."
(여) : "잘못했다고 그냥 야단이나 치면 경위 바른 사람으로 크겠어요?"
(남) : "그러나 나 같으면 그 같은 경우에 호되게 꾸짖기나 했을 거요."
(여) : "왜 꾸짖냐고 반항할 때일수록 윽박지르기보다 조목조목 경위를 따져서 타일러야 제 잘못을 뉘우치게 되지요."

* 여러분 잠깐만! *
'경위가 밝다'라는 말과 '사리에 밝다', '시비를 가린다'란 말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지요?

'사리에 밝다'란 말은 사물의 이치에 대해 막힐 데 없이 잘 안다는 뜻이므로 고도의 지식인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경위가 밝다'란 그런 고도의 지식이 없어도 인간으로서의 할 도리를 잘 행동화할 때 쓰는 말입니다. '시비를 가린다'란 말은 잘잘못을 따진다는 뜻이어서 비판적 성격을 띤 말입니다.

 

'고명딸'인가 '양념딸'인가

 

요즘은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세상이라 외아들이나 외딸을 둔 가정이 점점 늘어가는 형편이어서 무남독녀 외딸이란 말은 흔히 들을 수 있어도 '고명딸'이란 말은 듣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오늘과는 달리 옛날에는 자식들이 제 먹을 것은 타고난다면서 많은 자식들을 낳고 길렀습니다. 그런 시절에 아들 많은 집의 외동딸을 '고명딸'이라 일컬었습니다.

'고명'이란 말이 음식의 빛깔이나 맛을 돋우기 위해서 음식 위에 보기좋게 뿌리거나 얹어 놓는 양념류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었기 때문에 사내애들 틈에 양념으로 둔 딸이라 하여 '양념딸'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러나 '양념딸'은 표준어로 인정을 못받고 '고명딸'이 표준어로 인정되었습니다. "네 형제를 가진 집의 고명딸"이라든가 "고명딸을 밖에 내보낸 어머니처럼 마음을 놓지 못한다"고 쓰는 것을 보면 고명딸이 얼마나 귀염을 받았는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오는 일요일에 재당숙이 막내를 여읜다는데, 당신도 예식장에 함께 갑시다."
(여) : "아들 삼형제 끝에 얻은 고명딸이라고 끔찍이도 귀여워하시더니, 마침내 시집을 보내시는군요."
(남) : "식장에 고명딸을 데리고 들어가셔서 신랑에게 넘겨 주실 때, 우시지나 않을지 모르겠어."
(여) : "고명딸의 경우만이 아니고, 신부 아버지는 누구나 그때가 제일 섭섭하다던데요."
(남) : "좋은 신랑감에게 인도해 주는데, 뭐가 그리 섭섭할까?"
(여) : "이 다음에 우리 고명딸 데리고 들어갈 때, 당신도 섭섭해 할지 어찌 알겠어요."

* 여러분 잠깐만! *
'고명딸'과 '외동딸'은 완전동의어일까요?

'외동딸'에 '고명딸'의 뜻도 있지만, 무남독녀라는 뜻으로도 쓰기 때문에 완전동의어가 아닙니다.

 

'고임새'인가 '굄새'인가

 

돌잔치, 회갑잔치 또는 제사 지내기 위해 상차림한 것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떡, 과자, 과실 따위를 그릇에 차고차곡 쌓아 올려서 높다랗게 괴어 놓아 풍성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색색의 조과를 모양 좋게 쌓아 올린 솜씨도 그럴 듯하지만, 잣과 같이 알이 작은 열매를 일일이 실에 꿰어 그것을 높이 괴어 올린 모습을 보면 공이 얼마나 들었을까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요즘에는 모양만 내기 위해서 가운데는 비우고 둘레에만 과자나 과실 따위를 풀로 붙여서 눈가림을 한 것이 많고, 그런 모조품을 팔거나 대여하는 곳도 있는 줄 압니다만, 예전에는 며칠씩 굄질을 잘 하는 사람이 애써 만들곤했습니다. 그처럼 굄질하는 일이나 굄질하여 놓는 모양새를 '굄새' 또는 '고임새'라고 합니다. 잔칫상이나 젯상을 푸짐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정성과 나중에 그것을 풀어 먹게 될 일꾼들의 구미를 위해 알차게 꾸미는 뜻도 있습니다.

이 '굄새' 또는 '고임새'는 '괴다' 또는 '고이다 '란 동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종래에는 '괴다'를 표준어로 삼았기 때문에 '굄새', '굄질'만이 표준어였고, '고임새', '고임질'등은 비표준어였습니다만, 이번 표준어 사정에서는 이들을 복수표준어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괴다' '고이다', '굄새', '고임새'등이 다 표준어로 인정되었습니다.
'괴다 '또는 '고이다'에 여러 뜻이 있어 어떤 것은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되고, 어떤 것은 다의어(多義語)가 되기도 합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아버지 제삿날에 굄질은 으레 박서방이 와서 했었는데, 올해는 소식이 없으니 웬일일까?"
(여) : "굄질만 잘 하는게 아니라, 뭐든지 쓸모 있게 잘 만드는 걸 보면, 재주가 보통이 아니어요?"
(남) : "재주 많은 사람 한가할 틈이 있나, 예서 부르고 졔서 부르니."
(여) : "딴 데로 멀리 일 간 거나 아닐까요? 그럼 낭팬데...."
(남) : "말도 없이 그럴 리야 있나, 굄질할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는 걸 뻔히 아는데."

* 여러분 잠깐만! *
'괴다' : '고이다'처럼 복수표준어로 인정된 비슷한 예로 어떤 것이 또 있을까요?

표준어 규정 제 18항에 보면, '꾀다' : '꼬이다', '쐬다' : '쏘이다', '죄다' : '조이다', '쬐다' : '쪼이다' 등이 있습니다.

 

'곤란'인가 '곤난'인가

 

[골란]이란 말은 몹시 딱하고 어렵게 된 일이나 그러한 상태를 나타내주는 말입니다. "곤란한 사정에 처했다."라든가, "생활이 곤란하다."처럼 쓰이는 말입니다. [골란]은 명사고 [골란하다]는 형용사인데, 형용사 형태로 많이 쓰입니다.

이[골란]이란 말은 한자어입니다. 곤할 곤(困)과 어려울 난(難)자가 합성되어 이루어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한자의 원음에 따라 적으면 '곤난'이라고 적어야 옳습니다. 그러므로 한자의 원음에 따라 적으면'곤난이라고 적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적으면 [곤난], [곤나하다]처럼 발음되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음 [골란]에 맞지 않습니다. [골란]이란 발음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나 곤할 困자의 음을 바르게 적기 위해서는 '곤란'으로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말에 'ㄴ과' 'ㄹ'이 연속되면 'ㄹ, ㄹ'로 발음되는 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라'라 적어 놓고 [실라]라 발음하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이처럼 한자어 가운데 원음대로 소리나는 것은 그대로 적되, 속음으로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도록 한 맞춤법 규정이 있습니다.

* 대화(동료간) *
(남) : "이 문제에 대해 논란이 많았지만, 그대로 집행하기로 허락을 받았습니다."
(여) : "만난을 극복하고 승낙을 얻어 내신 선생님께 감사와 축하를 아울러 드립니다."
(남) : "토론에 붙였을 때 열심히 변론해 주신 덕분이라 믿고 있습니다."
(여) : "변론이라기보다 비난에 가깝지 않았던가요?"
(남) : "문제의 약점을 지적해 주신 게 제게는 오히려 약이 되었습니다.

* 여러분 잠깐만! *
道場[길도, 마당장]을 [도장]이라 할 때도 있고 [도량]이라 할 때도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도량]이라 할 때는 불도를 닦는 깨끗한 곳이란 뜻으로 쓰는 불교용어로서 속음에 해당합니다. [도장]이라 할 때는 무예를 닦는 곳을 이르는 말입니다.

 

'곱빼기'와 '맛빼기'

 

몹시 시장하거난 구미가 당길 때에는 음식을 곱빼기로 시켜먹고, 반대로 양보다 맛으로 조금만 먹고 싶을 때에는 맛빼기로 주문을 합니다. '곱빼기'란 두 그릇의 양을 한 그릇에 담은 분량을 나타낼 때, 또는 어떤 일을 계속해서 두 번 거듭하는 것을 나타내는 데 쓰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일정한 거리를 두 번 세 번 거듭하여 왕래할 때는 '고팽이'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예컨대, 학교까지 두 번 왕복하였을 때, "학교까지 두 고팽이나 하였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원래 '고팽이'란 말은 새끼나 줄 따위를 사리어 놓았을 때 그 한 돌림을 세는 단위입니다.

이 '곱빼기'란 단어는 전에는 '곱배기'라고 표기하고 '맛빼기' 역시 '맛배기'로 표기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새 한글 맞춤법에서는 다른 형태소 뒤에서 [빼기]로 발음되는 것은 모두 '빼기'로 적기로 하였기 때문에 '곱빼기', '맛빼기'로 적어야 옳습니다.

* 대화(주객간) *
(남) : "곱빼기 냉면 하나 주십시오."
(여) : "늘 맛빼기만 잡숫더니 오늘은 웬일로 곱빼기를 시키시죠?"
(남) : "비빠서 점심을 걸렀더니 시장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여) : "우선 이 빈대떡 한 접시를 먼저 드세요, 허기를 면하시게요."
(남) : "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음식은 맛깔져서 늘 더 먹게 됩니다."
(여) : "잡숫고 신에 붙잖으면 더 청하세요. 단골 손님이니 잘 대접해 드려야지요."

* 여러분 잠깐만! *
'뚝배기'와 '언덕빼기'가 다 ㄱ받침 다음인데 왜 하나는 '배기'로 적고 다른하나는 '빼기'로 적을까요?

한 형태소 내부냐 다른 형태소 다음이냐의 차이입니다. 쉽게 말하면 '뚝배기'는 '뚝'과 '배기'의 두 요소로 나누어지지 않고, '언덕빼기'는 '언덕'과 '빼기'로 나누어질 수 있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뚝'에는 뜻이 없기 때문에 '뚝배기'는 한 형태소로의 단어이고, '언덕빼기'는 두 형태소로 된 단어라는 점에서 구분 표기한 것입니다.

 

'공해에 찌든'인가 '공해에 찌들은'인가

 

우리나라도 산업사회로 발돋음하면서 공해 문제가 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공장 지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차량 통행이 많은 곳, 대기 오염을 가속화시키는 고층 빌딩의 매연 등을 규제하고 시설을 보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숱한 문제점과 개선책 등이 늘 거론되고 있음에도 우리의 자연은 계속 오염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럴 때 '공해에 찌든 자연'이란 표현을 자주 하게 되는데, '찌든'이란 말의 의미를 더 분명히 하고 싶어서인지 '공해에 찌들은'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찌들다'의 경우만이 아니라 '거치른 타올', '나르는 궁전'과 같이 '거칠다', '날다'와 같은 용언들도 잘못 활용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들 용언들은 소위 'ㄹ'불규칙용언들로서 관형사형으로는 '찌든은, 거칠은, 나르는' 등은 틀린 말입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이 꽃들이 자동차 배기 가스에 시달려 시들어 버렸구려."
(여) : "꽃만이 아니라 나뭇잎들도 매연에 완전히 찌든 형상이에요."
(남) : "이런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으니, 호흡기 질환이 많아질 수밖에."
(여) : "사람들이 틈만 나면 공해에 찌든 도시에서 들이나 산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여러분 잠깐만! *
'ㄹ'불규칙용언은 'ㄴ, ㅂ, ㅅ, 오' 이외에서는 어간이 줄어들지 않는게 원칙인데, '하다마다', '하지마라'처럼 '말다'의 'ㄹ'의 탈락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원칙적으로 어간의 'ㄹ'이 'ㄷ, ㅈ, 아' 앞에서 줄지 않는게 원칙이나 관용상 'ㄹ'이 줄어 굳어진 형태는 준대로 적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준 형태가 문어체 명령형에서나 간접인용에서는 '말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가지 말라.', '읽지 말라고 하였다.'

 

'광주리'인가 '광우리'인가

 

우리 생활은 과학 문명의 혜택으로 넉넉하고 편하게 개선되고 있으며, 생활용품들도 옛날의 그것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재질면에서난 기능면에서 아주 훌룽해졌습니다.

옛날 윌 조상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생활용품의 대다수를 손수 만들어 쓴 것이 많았습니다. 가마니, 멍석, 기직, 바구니, 다래끼, 삼태기, 둥구미, 멱서리, 조리, 광주리, 채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필요한 재료들을 틈틈이 준비했다가 농한기에 이들을 들었으니, 어떤 점에서 선인들은 아주 훌륭한 공예 기술을 몸에 지닌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주리는 주로 싸리로 엮어 만든 용기로서 여인들이 머리에 이고 다니는 일이 많습니다. 빨래를 담아 개울가로 나갈 때도, 들에 음식을 여 나를 때도, 밭에서 고추, 감자, 야채 등을 걷어들일 때도 광주리에 담아 이고 다녔습니다.

6·25 전만 해도 이 광주리에 잡화를 이고 다니면서 행상을 하는 광주리 장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로 시골 아낙네들을 상대로 실, 바늘, 가위, 물감, 비누, 화장품, 과일, 사탕, 과자 등 온갖 잡동사니를 이고 다니며 팔았습니다. 이와 같음 잡살뱅이를 황 : 아(荒貨)라 하고 그런 장사꾼을 황아장수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황아장수는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확성기로 손님을 불러모으고 있고, 들밥은 경운기로 나르고, 빨래터에는 플라스틱 용기가 쓰이며, 밭곡식은 비닐 부대에 담겨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마을 저 마을의 소식을 전해 주고 때로는 혼사도 맺어 주던 광주리장수, 등짐장수 들을 만나기도 이제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당신 들고 있는 것 광주리가 아니오? 아주 새 것인데 웬 거요?"
(여) : "시장에 나갔더니 대바구니를 파는 아주마가 이 광주리도 팔고 있지 않겠어요. 옛날 고향 생각도 나고, 큰일 할 때 필요할 듯도 해서 얼른 샀지요."
(남) : "일종의 향수가 충동 구매를 조장한 셈이군. 스테인리스 다라이는 이제 뭐에다 쓸 거요?"
(여) : "용도가 다 다르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다라이는 일본말이니까 앞으로는 스테인리스 자배기라 하세요."

* 여러분 잠깐만! *
등짐장수를 '부상'이라 한다면 '보부상'은 무슨 장수인가요?

'보부상'이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아울러 일컫는 말입니다. 즉, 褓商과 負商을 합친 것이 褓負商입니다.

 

'괴로워'인가 '괴로와'인가

 

法句經에 '사랑하지도 말라, 미워하지도 말라. 사랑하면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면 만나서 괴로우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이란 것이 人生(인생)의 집착에서 유래하는 것이고 보면, 무엇에고 깊이 잡착하지 않는 것이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것임을 보여 주는 金言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편 人生이 무엇인가, 그리고 또한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않으면 人生이 얼마나 무미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번뇌를 떨쳐버리고 明鏡止水와 같은 心境에 도달한 부처라면 모를까, 보통 사람들은 희로애락을 싣고 人生을 각축하며, 또한 사랑과 미움을 싣고 人生을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안타까워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면서 울고 웃는게 人生인데, 이런 모든 것이 없어진다면, 즉, 기복이 없는 평면적 人生이 과연 사는 맛이 있으는지 모르겠습니다.

법구경 구졀 가운데 나온 '괴롭고, 괴로우니라'는 ㅂ불규칙용언입니다. ㅂ불규칙용언은 종래에는 어간에 어미 '아/어'가 연결될 때 모음조화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괴롭다'는 '괴로와'가 되고, '무겁다'는 '무거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 맞춤법 규정에서는 '괴로와'도 '괴로워'로 표기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와'가 아니라 '아름다워'가 맞는 표기가 되었습니다.

* 대화(부부간) *
(여) :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남) : "웬일로 찬송가를 별안간 불러대오?"
(여) : "저 아래 펼쳐진 경치와 높푸른 가을 하늘을 보세요. 절로 창조주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지 않아요?"
(남) : "가볍게 흘러가는 구름, 아름다운 산과 물, 그림 같은 집들이 어울려 볼만하군 그래."
(여) : "이런 경치 보기 쉽지 않으니 여기서 푹 쉬었다 가면 어때요?"
(남) : "좋지. 당신의 노래 솜씨도 더 감상할 수 있을 테고."

* 여러분 잠깐만! *
'차갑다', '아니꼽다' 같은 단어들도 '차가워', '아니꼬워'처럼 활용될까요?

그렇습니다. '돕다, 곱다'처럼 모음이 'ㅗ'인 단음절 어간 뒤에만 '-아'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차갑, 아니꼽' 같은 2음절 또는 3음절 어간에는 '-억'가 붙어야만 합니다.
어간 말음이 'ㅂ'이라도 규칙적으로 활용하는 단어들도 많이 있습니다. '손꼽다, 뽑다, 씹다, 잡다, 접다, 집다, 좁다, 굽다(曲), 업다' 등

 

'교육하다'인가 '교육시키다'인가

 

"아이들을 그렇게 교육시키면 안 돼."라든가, "아무개를 구속시킨 것은 큰 잘못이다."와 같은 말을 자주 듭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현은 당연히 "아이들을 그렇게 교육하면 안 돼."라든가 "아무개를 구속한 것은 큰 잘못이다."라고 말해야 옳은 것입니다.

'교육하다'는 가르치고 가른다는 말입니다. '가르치다'도 타동사고 '기르다'도 타동사니까 '교육하다'도 타동사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교육하다'라고 해야지 '아이를 교육시킨다'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시키다'는 주체가 남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도록 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녀를 훌륭한 선생에게 의뢰하여 교육시킬 수는 있어도, 내가 내 자식을 교육시킨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속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아무개를 구속한 것이지, 정부가 누구에겐가 그를 구속하라고 시킨 것이 아니라면, '아무개를 구속시킨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자동사와 타동사를 가리지 않고 '시키다'를 함부로 붙여 사용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아이들을 훌륭하게 교육해서 참다운 사람이 되게 해야 할 텐데."
(여) : "요즘은 훌륭하게 교육하기도 어렵고 참다운 사람이 되게 하기도 어려워요."
(남) : "교육환경도 나쁘고, 교육 방법도 문제가 있지만, 좋은 사람 만들려면 꾸준한 인내와 놀겨을 기울일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소?"
(여) : 온갖 노력을 경주한다는 게 그리 쉬운가요? 어떻든 아이들이 배운 것을 잘 소화할 수나 있으면 좋겠어요."

* 여러분 잠깐만! *
'좋은 소화제는 음식을 잘 소화시킨다.'는 말은 바른 말인가요?

바른 말입니다. 소화제가 음식을 소화하게 하니까요. 그러나 "아이들이 배운 것을 소화한다."라고 해야 할 것을 '아이들이 배운 것을 소화시킨다."고 하면 그른 말이 됩니다.

 

'구명하다'와 '규명하다'

 

'사리를 구명하다'와 '사실을 규명하다'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究明하다'는 궁리할 究자와 밝을 明자로 이루어진 말로서 까닭이나 사리를 깊이 연구하여 밝힌다는 말입니다. 궁리할 究자는 대체로 어떤 원리나 기능 등에 관해 연구하고 추심하거나 더 완벽한 이론을 세우는 데 주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분히 학구적 성격을 띠게 됩니다. 진리를 구명하고 원인·결과를 밝히는 것이 이 '구명하다'와 관련이 됩니다.

그러나 '糾明하다'는 살필 糾자와 밝을 明자로 이루어진 말로서 사실을 자세히 따져서 바로 밝힌다는 말입니다. 살 糾자는 어떤 사실 또는 사건을 따져 물음으로써 진실을 밝혀 내고, 그 가치를 평가한다는 특성을 갖는 말입니다. 죄를 따져 묻는 것을 규문(糾問)이라 하는 점을 봐도 '규명하다'라는 말은 어떤 원리나 기능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태·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을 밝힐 때 쓰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대화(동료간) *
(남) : "이 주장이 어떤 원리에 근거하고 있는지 구명해 주시겠습니까?"
(여) : "어제 사건의 진상 규명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일거리를 또 주시면 어떻게 다 해내지요?"
(남) : "일이야 한 가지씩 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두세 가지를 병행해서 해야 능률이 오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 :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능률적인지를 먼저 구명해 봐야겠습니다.

* 여러분 잠깐만! *
'살필 규'자가 들어 있는 말로서 흔히 쓰이는 단어는 '규명' 이외에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잘못이나 옳지 못한 것을 폭로하고 공격하는 '규탄'이란 말이 있고,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으는 '규합'이란 말이 있습니다.
"반대 세력을 규탄한다.", "동지들을 규합한다."처럼 쓰이는 것이 그것입니다.

 

'국물'인가 '멀국'인가

 

우리의 음식은 그 맛과 빛깔이 다양하고, 조리하는 방법에서도 볶고, 지지고, 굽고, 끓이고, 부치고, 무치는 등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끓이거나 고아서 먹는 찌개나 국 종류가 유난히 많습니다. 콩나물국, 아욱국, 시금치국, 토란국, 미역국, 김치찌개, 생선찌개, 설렁탕, 갈비탕, 족탕, 곰탕, 육개장 등 부지기수입니다.

'국'이란 채소·어류·고기 등을 넣고 물을 많이 부어서 끓인 음식이기 때문에 '국물'이 많은 음식입니다. '국물'이야 '국'에 한한 것이 아니라, 김치나 젖갈, 그 밖의 액체 조미료들도 일종의 '국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육수 같은 것이 바로 국물에 속합니다.

그런데 '국물'은 지방에 따라 '멀국'또는 '말국'이라고도 합니다. 농도가 진한 국물인 '진국' 또는 '전국'과 대립하여 맑은 국물, 또는 멀건 국물이란 뜻으로 '말국', '멀국'이라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국물'이란 뜻으로는 '말국'과 '멀국'은 비표준어이기 때문에 단수표준어인 '국물'만 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뭐 시원한 국물 없소? 속이 답답한 때 먹을 만한 거 말이오."
(여) : "동치미 국물을 드릴까요, 식혜를 드릴까요?"
(남) : "식혜는 먹을 때는 시원한 것 같지만 얼마 안 가서 도로 답답해지니, 속 시원하기로는 동치미 국물이 훨씬 낫겠지?"
(여) : "무에서 우러나 국물이니까 소화 기능에 좋기로야 동치미 국물이 물론 낫지요."

* 여러분 잠깐만! *
국이나 찌개 따위를 끓일 때 '바특하게 끓여라'라고 했다면 어떻게 하라는 뜻일까요?

국물을 적게 잡아 맛있고 톡톡하게 끓이라는 말입니다. 고기나 생선 등을 조금 넣고 물을 많이 잡아 끓이면 국물이 묽고 맛이 없게 되나, 바특하게 끓이면 맛이 좋고, 먹는 양이 적어서 부담이 적게 됩니다. 양보다 질이 우선인 셈이지요. '맛빼기'로 끓이라는 것입니다.

 

'귀감'과 '타산지석'

 

남을 거울 삼는다[借他鑑己]는 말에 '귀감(龜鑑)'과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감'이라는 것은 사물의 거울, 본보기, 행위의 기준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거북은 길흉을 점치고 거울은 사물의 그림자를 비친다는 데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귀감'은 '귀경(龜鏡)'이라고도 합니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은 다른 산에서 나는 나쁜 돌이라도 나의 옥을 갈고 닦는 데에 소용이 된다는 뜻의 말입니다. 남의 하찮은 언행도 자기의 지덕을 연마하는 데 도움이 되며, 악인도 선인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한 말입니다.

논어 가운데, "세 사람이 길을 가매 반드시 나의 스승이 그 가운데에 있다. 선한 사람을 본받아 따를 것이고, 불선한 사람의 언행을 보고 자기를 바로 고쳐 나갈 것이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전자는 귀감을 삼으란 뜻이고, 후자는 타산지석으로 삼으란 뜻입니다. 이처럼 '귀감'과 '타산지석'은 남을 거울 삼되, 그 내용에 있어서 '귀감'은 남의 좋은 점을 본받으라는 말이고, '타산지석'은 남의 불선도 나를 닦는 거울로 삼으라는 말이기 때문에,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말입니다.

* 대화(부녀간) *
(남) : "현주야,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을 친구로 삼아라."
(여) : "친구 중에 공부도 잘하고, 아주 친절하게 모든 사람을 대해 주는 애가 있어서 친하게 지내려고 그래요."
(남) : "친하게 지내는 것하고 그의 언행을 거울로 삼는 것하고는 다른 것이다."
(여) "좋은 친구의 언행은 제게 귀감이 되고, 좀 못한 친구의 언행은 타산지석이 되겠지요."

* 여러분 잠깐만! *
본받을 만한 모범을 '귀감'이라고 했습니다. '귀감'을 '구감'이라고 하면 안 되는지요?

'귀감'이라고 해야 합니다. 는 뜻에 따라 음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거북의 뜻일 때는 '귀', 나라 이름일 때는 '구', 터진다의 뜻일 때는 '균'(균열 : 龜裂)입니다.

 

'긴가민가'인가 '긘가믠가'인가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만 그 어원을 잘 모르는 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런지 그렇지 않으지 분명하지 않은 모양을 나타낼 때 '긴가민가'란 말을 합니다. 예를들면,

"오늘이 정씨와 만나기로 한 날인지, 긴가민가해서 단언할 수가 없다." 처럼 쓰는 말입니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을 때,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이 말을 흔히 쓰게 됩니다.

그런데 이 '긴가민가'라는 부사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습니다. 이 말은 '其然가未然가'라는 원말이 변한 말인데, 그 원말만 사전에 올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 생활에서는 원말로 쓰이기보다는 '긴가민가'의 형태인 '긴가민가'를 표준어로 삼아야 하고, 사전에도 올려야 할 말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이번의 새로운 표준어 규정이 현실 언어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놓고 보면, '긴가민가'라는 부사와 '긴가민가하다'라는 형용사는 당연히 인정되어야 할 말이라 여겨집니다.

* 대화(동료간) *
(남) : "긴가민가하고 반신반의하지 말고 철저하게 조사하고 확인해 보십시오."
(여) : "사실 여부를 알기 위해 조사하노라고 했지만, 그 풍무의 진원을 아직 못 잡았습니다."
(남) : "진원 포착보다는 그렇다는 쪽에서 영향을 따져보고 조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 : "기연미연한 풍문을 놓고, 어떻게 그렇다는 쪽에서 영향을 따져 보겠습니까?"
(남) : "그런 생각 자체가 철저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다 그 풍문이 사실일 때는 대비가 되겠습니까?"

* 여러분 잠깐만! *
"그러니말리 말이 많아서 결정을 못 짓겠다."는 말을 가끔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뜻으로 '그러니말리'란 말을 쓴 것일까요?

'그러니말리'는 그러겠느니 말겠느니 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부사입니다. '긴가민가'처럼 긍정·부정의 말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비슷한 배합으로 이루어진 말로는 '이래저래', '그러나저러나'등이 있습니다.

 

 

'깃발'의 발음은?

 

'깃발'의 발음은 [기빨], [긷빨], 혹은 [깁빨]로도 발음이 됩니다. '깃발'은 사이시옷이 붙은 단어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받침법칙에 의해서 [긷빨]로 발음해야 옳지만, [긷빨]의 'ㄷ'이 'ㅂ'을 닮아서 [깁빨]이 되고 다시 'ㅂ'이 탈락해서 [기빨]이 되므로 여러 가지로 발음이 됩니다.

이와 같은 혼동을 피하기 위해 표준 발음법에서는 사이시옷이 붙은 단어의 경우 그 발음을 몇 가지로 규정하였습니다. '깃발'의 경우는 [기빨]을 원칙으로 하고, [긷빨]은 허용하는 것으로 하고, [깁빨]은 허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깁빨]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는 그 자음동화가 필연적이 아니고 수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문법'을 [뭄뻡], '꽃밭'을 [꼽받]처럼 발음하는 일이 있으나 그것을 표준으로 삼지 않느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 대화(동지간) *
(남) : "샛길로 빠져서 냇가에 닿거든 깃발을 흔들어 신호하시오."
(여) : "뱃머리에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아도 깃발로 신호하나요?"
(남) : "누군가가 뱃속에서 보고 있을 것이오. 걱정하지 말고 이어서 두 번째 신호를 하시오."
(여) : "나뭇잎을 두 번 냇물을 향해 흩뿌리란 말이죠?"
(남) : "알았으면 뒷일은 내게 맡기고 어서 떠나시오."

* 여러분 잠깐만! *
'숙제', '옷장', '웃다', '옷입다'와 같이 사이시옷이 아닌 ㅅ받침의 경우에도 사이시옷에 준해 발음하면 됩니까?

그렇습니다. [수쩨/숟쩨], [오짱/옫짱], [우 : 따/욷 : 따], [옫닙따/온닙따]처럼 발음하면 됩니다. 다만, '잇몸'같은 경우 [인몸]이라고 해야지, [임몸]이라고 발음하면 표준 발음이 아닙니다.

 

'꺼림하다'와 '께름하다'

 

친구와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다투었다든가, 그와의 약속을 어겼을 때 마음이 꺼림칙합니다. 또한,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그로 말미암아 어떤 재앙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때 역시 마음에 꺼림합니다. 마음에 꺼림하거나 꺼림칙한 게 어디 이런 것 뿐이겠습니까? 깨끗지못한 것 같은 음식을 먹었을 때도 탈이나 나지 않을까 께름하고, 꿈자리가 뒤숭숭해도 께름하며, 아이들을 호되게 나무랐을 때도 한쪽으로 꺼림합니다.

말씀드린 여러 경우가 다 마음에 꺼림한,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경우입니다만, 이 '꺼림하다'란 말이 바로 그런 상황에서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뉘우치거나 불안한 감정 등이 마음에 걸려서 유쾌하지 않고 마음이 언짢거나 뭉클한 것이 '꺼림하다, 꺼림칙하다', 또는 '께름하다, 께름직하다'입니다.
종래에는 '꺼림하다'만을 표준어로 삼았던 말입니다만, 새 표준어 사정에서 '께름하다'역시 복수표준어로 인정한 말입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상가에 가면 그 음식 먹기가 좀 꺼림하곤 했는데, 오늘 김상가 음식은 어찌나 정갈한지 께름한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여) : "음식보다도 환경이나 분위기가 정숙하고 깨끗해서 그런 느낌을 받으신 건 아닌가요?"
(남) : "그런 것도 물론 작용했겠지만, 음식상 출납하는 모습이나 상차림자체에 께름한 구석이 전혀 없던 걸."
(여) : "큰일을 많이 치루던 사람이 주방을 맡아서 하나 보죠?"

* 여러분 잠깐만! *
'꺼림하다, 꺼림칙하다'와 반대되는 심리 상태는 뭐라고 할까요?

'개운하다'라고 합니다. 기분이나 몸이 아주 상쾌하거나 가볍다는 뜻입니다. 이 '개운하다'는 산뜻하고 깔끔한 음식 맛을 낱낼 때도 씁니다. 이 음식 맛의 반대말은 '텁텁하다'입니다.

 

'꼭두각시'인가 '꼭둑각시'인가

 

꼭두각시 놀음은 민속 인형극의 한 가지입니다. 무대 위에 남녀의 여러 인형을 번갈아 등장시키고, 무대 밑이나 뒤에서 인형을 조정하여 동작하게하고, 그 동작에 맞춰 대사를 말하는 연극을 말합니다. 꼭두각시 놀음, 줄타기, 땅재주 등 여러 가지 연희를 하는 사람들을 사당패 혹은 남사당(男寺黨)이라 하는데, 관객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공연하기 때문에 일종의 유랑극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연희 중 꼭두각시놀음은 유명합니다.

인형을 조작하여 연극하는 것을 꼭두각시 놀음이라 하는 것처럼, 앞잡이를 내세우고 뒤에서 그를 조종하여 어떤 일을 할 때도, 그 앞잡이를 꼭두각시, 망석중이, 괴뢰(傀儡), 또는 허수아비라 합니다. 이 '꼭두각시'는 얼마전까지 '꼭둑각시'가 표준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표준어 규정에서 '꼭두각시'가 더 널리 쓰이고 있음을 인정하여 그것을 표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 대화(존비자간) *
(갑) : "남의 꼭두각시 노릇 그만하고, 네 주견대로 행동하여라."
(을) : "제가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강제로 앞잡이 노릇을 시키니 마지못해 하지요."
(갑) : "그렇다고 그짓을 계속하면 네 신세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남의 신세까지 망가뜨리게 되느니라."
(을) : "어르신네 말씀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명심하겠습니다."

* 여러분 잠깐만! *
"제가 김아무개올습니다."라고 자기 소개를 하는 것이 옳습니까?

"제가 김아무개올시다."라고 해야 옳습니다. 표준어 규정 제17항에서 '-읍니다'는 '-습니다'로 '-올습니다'로 '-올습니다'는 '-올시다'로 통일했기 때문입니다. '-올시다'란 말을 쓰지 않으려면, "제가 김아무개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꼭두각시전
조선 19대 숙종 때 전라도 무주에 사는 노처녀 꼭두각시가 병신에다 백발성성한 늙은 신랑한테 시집가서 남편을 잘 섬기고 자녀도 낳고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는 이야기. 지은이와 지은 연대 미상.

 

'꼼짝달싹'인가 '옴쭉달싹'인가

 

지하철을 탔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 꼼짝달싹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 갑자기 크게 놀랄 일을 당하였을 때 역시 순간적으로 꼼짝달싹도 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꼼짝달싹도 안 하고 한 곳에 오랫동안 앉아 있을 때도 있고, 상대방의 권세나 힘에 눌려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꼼짝달싹'이란 말은 '못하다, 아니하다'와 같은 부정사와 함께 쓰여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 '꼼짝달싹'은 '꼼짝'과 '달싹'의 합성어입니다. '꼼짝'은 둔한 몸집을 작게 한번 움직이는 모양을 나탄내는 말이고, '달싹' 역시 붙었던 것이 약간 들렸다 가라앉았다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꼼짝달싹'은 고정되거나 정지된 상태에서 작고 세게 한번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종래에는 '옴쭉달싹'을 표준어로 삼고 '꼼짝달싹'을 비표준어로 처리했던것인데, 이번 새 표준어 사정에서는 그 정반대로 처리가 된 말 중의 하나입니다. 즉 '꼼짝달싹'이 표준어이고, '옴쭉달싹'이 비표준어입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애들은 하루 종일 제 방에서 꼼짝달싹도 안 하니 웬일이오?
(여) : "희준이는 설계하느라고 정신이 없고, 현주는 여행 사진 정리한다고 어제부터 두문불출이에요."
(남) : "나도 내일부터는 새롭게 시작되는 일 때문에 꼼짝할 수 없을 텐데, 당신만 한가한 셈이구려."
(여) : "한가하긴 뭐가 한가해요. 집안 치우고, 밥 해 먹고, 빨래하는 일만 해도 누구 못지않게 바쁘다고요."
(남) : "그러고 보니 당신이야말로 살림 때문에 꼼짝달싹도 못할 형편이군 그래."

* 여러분 잠깐만! *
'옴쭉달싹'이 표준어의 자리를 '옴짝달싹' 또는 '꼼짝달싹'에 넘겨준 것처럼 단수표준어로 새롭게 지정된 것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흉헙다'가 '흉업다'로, '-읍니다'가 '-습니다'로, '내흉스럽다'가 '내숭스럽다'로, '꼭둑각시'가 '꼭두각시'로 바뀐 것들이 다 그런 예들입니다.

 

'꽁지'와 '꼬리'

 

'꽁지'란 날짐승의 꽁무니에 붙은 기다란 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길고 아름다운 꽁지깃을 지니고 있는 수탉이나 수꿩을 생각해 보십시오. 특히,장끼의 꽁지깃을 보기 위해 박제로 만들어 장식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길고 아름다운 꽁지깃을 자랑해야 할 수탉이나 장끼가 꽁지깃이 다 빠진 모습으로 서 있거나 걸어다닌다면 그 모습이 얼마나 추레하고 볼품이 없겠습니까? "꽁지 빠진 새 같다."는 속담이 그런 모습을 여실히 나타낸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는 달리 '꼬리'는 길짐승의 꽁무니나 몸둥이의 뒤 끝에 가늘고 길게 내민 부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개꼬리', '쥐꼬리'등이 그것입니다. "개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黃毛)못 된다."라든가 "쥐꼬리만 하다."와 같은 속담에서 그런 말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꼬리가 길면 밟힌다."라든가 "먼저 꼬리 친 개 나중 먹는다."는 속담에서도 '꼬리'라는 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날짐승도 아닌데 꽁지를 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짧아서 거의 없다는 뜻으로 "게꽁지 만하다.", "두꺼비 꽁지 만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노루 꼬리 만하다."와 같이 쓰이는 속담인데, 게는 물에서 사는 것이고, 두꺼비는 양서동물(兩棲動物)이기 때문에 분명 날짐승이 아닌데 '꽁지'를 쓴 것입니다. 문제는 게나 두꺼비에 꽁지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꽁지는 없고 꽁무니는 보기에 따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관용구 이외에서는 '꽁지'는 날짐승에, '꼬리'는 길짐승에 쓰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꽁지 빠진 수탉처럼 추레하게 섰지 말고, 어서 이 자리를 떠납시다."
(여) :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개 꼬리 감추고 도망치듯 떠날 건 뭐에요."
(남) : "쥑고리 만한 위신 생각하다가 더 무안 당하지 말고 그냥 가자니까."
(여) : "더 이사 무안 당할 게 뭐 있어요. 먼저 꼬리 친 개 나중 먹는다고, 설치던 사람이 어떻게 되나 좀 보고 가요."

* 여러분 잠깐만! *
'꽁무니를 뺀다.'는 말이 있는데, '꽁무니'와 '꼬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꽁무니'는 등마루뼈의 끝부분이나 엉덩이를 중심한 몸의 뒷부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날짐승, 길짐승, 물고기 등에 두루 쓰일 수는 있으나, 주로 사람에 쓰며, 뒤 또는 맨끝이라는 뜻으로 씁니다. "여자 꽁무니만 따라 다닌다.", "뒤꽁무니에 권총을 찼다."처럼 씁니다.

 

'꾀보'인가 '꾀장이'인가

 

'꾀보'라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쓰입니다. 하나는 꾀가 많은 사람이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꾀만 부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전자는 일을 도모함에 있어 계책을 잘 내고 문제를 잘 해결하는 묘한 생각이나 수단을 발휘하는 사람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이란뜻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요리조리 살살 남의 눈치를 보면서 할 일을 아니하거나 어려운 일, 책임질 일을 살살 피하여 제게만 유리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니, 부정적 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다 제 멋에 산다고는 합니다만 원만한 인간 관계를 맺고, 남들로부터 신뢰와 존경, 혹은 사귀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려면 꾀를 부리는 사람보다는 꾀가 바른 사람이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합니다. 함께 일할 때 좋은 생각과 방법을 내는 사람,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밝혀 타개책을 내는 사람이라야지, 꾀나 부리며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꾀를 잘 부리는 사람이 제 꾀에 넘어가는 일이 많이 있고, 좀꾀를 부리다가 매벌이를 하는 일도 흔하니, 꾀를 쓰거나 꾀를 피우지 말고 제 일을 묵묵히 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대화(부녀간) *
(남) : "현주야, 꾀부리지 말고 어서 설거지도 하고 집안도 치워라."
(여) : "꾀부리는 게 아니라, 무엇부터 어떤 순서로 하는 게 효과적일까 생각 중이예요.'
(남) : "네가 꾀를 써 보려는 듯하지만, 가사라는 게 그런 꾀를 무색하게 하는 거란다."
(여) : "우리과의 꾀보라는 말을 듣는 제가 어떻게 일을 시작해서 끝맺는지 두고 보세요."
(남) : "네가 너의 과의 아이디어 뱅크라고? 무슨 꾀를 냈기에 너를 그렇게 부르니?"
(여) : "연중 행사는 제가 늘 계획하거든요. 크고 작은 것 모두요."

* 여러분 잠깐만! *
"꾀병에 말라 죽겠다."란 속담이 있습니다. 어떤 때 쓰는 속담일까요?

거짓으로 병난 체하자니 마음에 고민이 있게 되고, 그러므로 말라 죽겠다는 것이니 凡事에 피하기를 잘 하는 사람을 놀릴 때 쓰는 말입니다.
*물 탄 꾀가 전꾀를 속이려 한다.
*우렁이도 두렁 넘을 꾀가 있다.
*좀꾀에 매꾸러기

 

'끄나풀'인가 '끄나불'인가

 

끈 같은 것의 길지 않은 오래기를 '끄나풀'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묶을 만한 끄나풀이 없을까?" 할 때의 끄나풀입니다. 그러나 이 '끄나풀'이라는 말은 연줄 또는 연줄이 되는 사람을 이르기도 하고, 남의 앞잡이 노릇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일제의 끄나풀' 또는 '형사의 끄나풀' 할 때가 그것입니다.

이 '끄나풀'은 '끄나불'이 본래 표주어였었는데, 새 표준어 사정에서 거센소리를 택하고 예사소리를 버린 결과로 표준어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이처럼 예사소리 형태를 버리고 거센소리 형태를 표준어로 삼은 것에는 '나팔꽃', '칸막이', '털어먹다'등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거센소리 형태가 더 많이 쓰이기 때문이나 종래의 표준어 관념 때문에 다소 혼동을 일으키는 어형들이기도 합니다.

* 대화(부부간) *
(남) : "여보, 이 짐을 더 단단히 꾸리게 튼튼한 끄나풀 좀 구해 와요."
(여) : "이 끄나풀이면 되겠어요? 나일론 계통의 끄나풀인데."
(남) : "그보다 저 칸막이 앞에 있는 포장용 비닐끈이 더 좋겠소."
(여) : "그건 토막토막 끊어진 것이어서 쓸 수 없는 것이에요."
(남) : "한 발 정도씩만 되면 오히려 쓰기가 좋은데."
(여) : "대자쯤 되니까 괜찮겠네요. 네 도막인데 모두 드릴까요?"

* 여러분 잠깐만! *
'앞잡이'란 뜻의 '끄나풀'은 '프락치'라는 외래어에 더 가까울까요, '주구'라는 한자어에 더 가까울까요?

'주구(走狗)'라는 한자어와 더 가깝습니다. 주구란 사냥할 때 앞서 달려가는 개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이 앞잡이란 뜻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프락치'는 러시아어 쁘락찌까에서 온 말로서, 일정한 조직체의 지령을 받고 타조직에 밀파되어 공작을 수행하는 행동대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가져온 곳: [신화(神話) 그 울림을 찾아]  글쓴이: 신화와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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