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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법

요가

by 낮부엉이 2004. 5. 22. 15:56

본문

--목차--

1.수행이란?

2.수행법의 차이

3.힌두교와 불교 수행법 비교

1)요가

2)위빠사나

4.결론



<<*수행법 비교>>

1) 요가

:요가를 정의하자면 우선 요가의 산스크리트어원은 결합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절대

적인 실상과의 결합을 통하여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과 인과로부터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

을 말한다. 요가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론과 실기를 발전

시켜왔다. 지금부터 5000년 이전에 인더스 문명에서 요가를 실행하는 고고학자료들이 발굴

되었으며 3000년 이전에 형성된 인도의 베다경전과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경전에도 요가에 대해서 언급되었다. 요가는 고대로부터 많은 요기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아실현 즉 참나의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과학적인 수련체계이다.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요가를 과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하여 요가체조를 운동생리학이나 신체

교정학 또는 의학적으로 좋은 운동으로 검증되었으며 명상은 심리학이나 생리학적으로 효과

를 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특히 요가의 아사나 동작과 호흡법들은 육체의 경직되고 굳어

있는 뼈와 근육을 풀어주고 이완시켜 깊은 휴식을 주어 신경계통을 활성화하고 정신적인 안

정을 도모한다. 그러한 바탕 하에서 명상을 통하여 마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순수한 의식으로 이끌고 가게된다. 요가는 외부적이며 거칠은 몸의 수준에서부터 부드럽고 섬세한 내면의 마음과 의식의 세계까지 연결되어 있다. 요가는 다섯 가지의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나마야코샤는 육체층이며, 프라나야마코사는 호흡층이고, 마노마야코사는 마음, 비즈나나마야는 이지와 에고의 층이며, 아난다마야코사는 영적인 희열의 층이다.

수행자는 요가의 시스템에 의한 수행을 통해 모든 층을 거쳐 깊은 의식으로 몰입해 들어간

다. 요가의 생리학에서는 에너지 흐름인 쿤달리니와 에너지망인 나디가 프라나의 흐름을 통

해서 발전되고 상승되어 에너지와 힘을 얻어 건강을 되찾는다. 요가는 육체의 근육과 뼈와

신경뿐만 아니라 에너지의 기(氣)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도 발전시켜 주는 것이다. 요가

의 몸은 거친 수준의 몸과 섬세한 수준의 몸과 깊이 몰입된 수준의 몸이 있다. 요가는 모든

수준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다 효과를 주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가 오래되면 경시하듯이 우

리의 몸도 계속해서 정화시켜주고 윤활유를 쳐줌으로서 신경과 세포조직이 낙후되고 퇴화되

는 것을 방지하게 한다. 요가동작과 호흡법인 프라나야마와 이완법을 통하여 고혈압 및 관

절염, 동맥경화와 천식, 만성피로, 정맥팽창과 심장병 등의 질병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요가

체조를 규칙적으로 6개월간 실행한 결과 간기능 및 호흡기계통과 체중조절, 콜레스테롤 감

소가 되었다는 보고서들이 있다. 특히 요가 명상은 마음의 표면적인 의식으로부터 심층적인

고요함으로 이끌어 내면의 초월의식으로 이끌어 준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요가의 명

상방법을 체계화시켜 가르치고 있다. 요가는 여러 요가의 방법들이 있는데 다양한 요가의

방법들은 모두 몸과 마음의 수준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들이다. 모든 명상 방법들의 궁

극적인 목표는 자아발견이다. 다만 어떻게 자아확립의 수준으로 가져가느냐는 것인데 모든

생각과 의식의 기초는 고요한 순수의식이며 우리의 생각을 명상을 통하여 고요한 내면의식

으로 자연스럽고 순진하게 몰입하게 한다. 명상은 심리적으로 마음의 의식수준을 정화시켜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하게 하고 육체적으로 안정과 휴식을 주어 몸의 건강을 돌보게 한다.

요가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의 성장을 위한 체계적인 수단이며 직접 그것을 체험하게 하는 직접적인 방법이다. 요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몸을 다루는 하타 요가(Hata Yoga),마음을 다루고 명상으로 이끄는 라자 요가(Raja Yoga),행동과 봉사를 하는 까르마 요가(Karma Yoga),사랑과 헌신적인 길을 가는 박티 요가(Bakti Yoga),지혜와 분별의 길을 가는 즈나나 요가(Jnana Yoga)등이 있다.


요가에 관한 두 경전을 이해하면서 요가적인 수행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가)요가수트라

:요가의 근본 경전으로, 현존하는 것은 400∼450년 사이에 편찬된 것이다. 모두 4장 194경으로 구성된다. 자이나교·불교·상캬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요가를 통해 삼매와 해탈, 독존에 이르는 수행법을 담았다. 

제1장 삼매(三昧)에서는 요가를 양(量)·전도(顚倒)·분면·수면·기억이라는 5가지 마음의 작용을 제어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를 제어함으로써 삼매에 들 수 있다고 하였다. 마음의 작용이 아직 남아 있는 삼매를 유상삼매(有想三昧) 또는 유종(有種三昧)라 하고, 남아 있지 않은 상태를 무상삼매·무종삼매라고 부른다. 무상삼매에 들면 독존(獨存)을 얻게 된다.

제2장 실수(實修)에서는 삼매와 독존에 이르는 8단계의 수행법을 설명한다. ① 불살생(不殺生)·진실·불도(不盜)·불음(不淫)·무소유의 오계를 지키고, ② 청정과 만족·고행·학수(學修)·최고신(最高神)에 귀의하며, ③ 신체를 안정시켜 쾌적하게 하고, ④ 호흡을 조절하며, ⑤ 감각기관을 대상으로부터 끊고, ⑥ 마음을 한 곳에 묶어두며, ⑦ 관념을 집중하고, ⑧ 삼매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제3장에서는 위의 수행을 통하여 얻는 여러 가지 초인적인 지혜와 능력을 설명한다. 전생과 과거는 물론 미래를 알게 되며,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몸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제4장은 독존편으로 상캬파의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전개하고, 일상세계에서도 수행을 하면 독존을 얻어 해탈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 바가바드 기타

: 약칭하여 《기타》라고도 한다. ‘지고자(至高者:神)의 노래’라는 뜻이다.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大敍事詩) 《마하바라타》 가운데 제6권 <비스마파르바>의 제23∼40장(章)에 있는 철학적 ·종교적인 700구(句)의 시를 말한다(1933~72년 푸네에서 출간된 크리티칼의 경우). 저작자는 《마하바라타》의 편찬자인 비아사로 보는데, 성립연대는 BC 2세기설(說), 3세기설, 5세기설 등 확실치가 않다. 이 경전은 힌두교도의 ‘경전 중의 경전’으로 되어 있지만, 본래 크리슈나 신(神)을 믿는 비(非)브라만교의 일파인 바가바타파(派)의 경전이었던 것이 브라만교에 편승하여 변모를 거듭하였다.

이 기타 속에서 비슈누신(神)의 화신(化身)으로서, 바라타족(族)의 왕자인 아르주나의 친구이며 스승인 크리슈나는 석가 탄생보다 오래 전에 비(非)브라만교 유목민의 지도자이며 전쟁의 지휘자임과 동시에, 그들의 종교인 바가바타파의 교조(敎祖)로서 숭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브라만교에 혼합되어 처음의 성격을 상실하고, 우파니샤드 ·상키아 ·요가 ·베단타 등의 사상을 흡수하여 복잡하고 난해한 종교적 ·철학적 시가 되었다. 따라서 자연히 이 《기타》에 대한 해석도, 관점과 개성에 따라 다양한, 많은 주석서가 있다. 베단타 철학자이며 정통 힌두교의 종조(宗祖)라 할 수 있는 삼카라로부터 그의 계승자 아난다기리 ·수리드라 ·마두수다나 등이 있고, 그 밖에 라마누자 ·마드바 ·님바르카, 발라바가 있으며, 현대에 와서는 틸라크 ·아우로빈도 ·간디가 나름대로 독특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많은 해석은 모두 하나의 목적 즉 해탈(解脫)과 신인합일(神人合一)을 지향한 것이며 상호보족적(相互補足的)이다.

그 내용은, 18장의 시를 각각 6장씩 3개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그 첫째 부분인 1~4장은 아르주나(arjuna:人間)의 비탄과 절망의 말을 들은 크리슈나의 충고와 위안으로서 변화무쌍한 마야(my:摩耶)의 세계 가운데 불변 ·영원 ·불사(不死)의 신성(神性) 아트만(tman)이 있음을 가리키며, 또 의무의 충실과 카르마 요가(수행)와 라자 요가(인식), 지나나 요가 등을 가리킨다. 7~8장은 신에 관한 교리와 신의 절대 완전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봉사, 즉 바크티[信愛] 요가를 그 주제로 하고 있다. 13~18장은 거의 삼키아 철학이 중심적인 내용을 이루고 푸루샤(purua:我) ·프라크리티(prakti:自性) 및 3성(三性:Sattva ·Rajas ·Tamas)과 그에 따른 인간요소의 분류 ·분석, 그리고 끝으로 의무에 충실할 것과 최고존재인 브라만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 기타는 종교 ·철학 ·윤리와 문학적 특성이 통합되어 있는 인도인의 정신의 참고서라 한다.

바가바드기타에서는 세 가지 수행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지혜의 길(Jnana-yoga)이다. 우파니샤드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내가 곧 브라흐만이

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명상을 통해서 가능하다. 명상이라면 출가 수행자들이

숲 속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어 세속에서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로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둘째, 행위의 길(Karma-yoga)은 그같은 요청에 부응하고자 한다. 세속에서 일어나는 수많

은 행위를 해탈코자 한다. 이 때의 행위는 물론 선한 행위,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다. 그

런 이타적利他的이고 중생을 위하는 행위를 통해 충분히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행위

의 요가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혜의 길이나 행위의 길은 둘 다 스스로의 힘으로 힘껏 정진

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력自力의 세계는 대단히 의지가 강하고 지

성도 겸비해야 하며 어느 정도 자기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춘 사람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무지하고 죄를 짓고 어렵게 생활하는 까닭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셋째, 신애信愛의 길(Bhakti-yoga)은 바로 그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베풀어진 구원론이다.

신애의 길은 절대자에 대한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점에서 앞의 두 가지 방법과

다르다.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때문에 타력他力의 세계이다.





2)위빠사나

가)사성제의 이해

제(諦:satya)는 진리 ·진실의 의미이며, 그 진리가 신성(arya)한 것이라 하여 사성제(四聖諦) ·사진제(四眞諦)라고도 한다. 미혹의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의 인(因) ·과(果)를 설명하는 불교의기본적인 교리 조직으로 고제(苦諦:dubkha) ·집제(集諦:samudaya) ·멸제(滅諦:nirodha) ·도제(道諦:mrga)의 네 가지 진리를 말한다.

ㄱ) 고제: 현실세계의 참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범부(凡夫)의 생존은 괴로움이라는 진리이다. 인생의 고(苦)는 생 ·노 ·병 ·사(生老病死)의 4고로 표시되며, 또는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괴로움(怨憎會苦),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괴로움(所求不得苦), 그리고 이러한 괴로움의 근본인 오온(五蘊)에 집착하는 괴로움(五取蘊苦, 五陰盛苦:생존에 대한 집착)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여기서 자연현상으로서의 생 ·노 ·병 ·사가 괴로움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나는 생 ·노 ·병 ·사가 괴로움인 것이다. 그럼에도 생 ·노 ·병 ·사는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자기존재의 기반이다. 그러므로 이를 가리켜 고제라고 한다.

ㄴ) 집제: 괴로움의 원인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기가 취하는 생존이 바로 고가 되는 것은 마음 깊이 갈애(渴愛)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욕망의 근저가 되는 욕망이며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갈애에는 욕애(慾愛:감각적 욕망) ·유애(有愛:생존의 영속을 바라는 욕망) ·무유애(無有愛:생존의 단절을 바라는 욕망)의 세 가지가 있다. 행복을 구하는 것도 욕망의 일종이지만 갈애는 그것과는 달리 욕망의 근본에 있는 불만족성을 말한다. 이것이 인간의 불행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집제라는 것은 갈애를 근본으로 하는 여러 가지 번뇌이며, 괴로움의 원인이다. 따라서 집제와 고제는 미망의 원인과 결과를 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외부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부에서 발견하는 데에 불교의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ㄷ) 멸제: 이 갈애가 남김없이 없어진 상태를 말하며, 이것은 이상적 경지로서 열반(涅槃)이라고 말한다. 또한 마음이 갈애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해탈(解脫)이라고도 한다. 결국 갈애에 물들지 않고 행동하는 마음의 자유로운 상태이며 이것이 참된 즐거움이다. 열반은 멸(滅)로도 번역되기 때문에 열반을 허무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으나 멸은 갈애의 멸이지 마음 그 자체의 멸은 아니다. 갈애가 멸함에 따라 올바른 지혜가 나타나며, 그 지혜에 의하여 알게 되는 부동의 진리가 열반이다.

ㄹ) 도제: 이 고(苦)와 집(集)의 멸을 실현하는 길을 도제라고 한다. 이 수행방법은 8정도(八正道) 또는 팔성도(八聖道)로 표시된다.


나) 8정도의 이해

:팔정도(八正道)의 원어는 '아리요 아탕기꼬 막가(Ariyo atthangiko magga)'이다. 그대로 번역하면 '여덟 개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도(道)'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팔정도와

함께 팔성도(八聖道)라고도 한역되었다.


첫째 정지견(正知見)은 바른 견해다. 중생들이 지닌 그릇된 가치관을 버리고 올바른 소견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의 바른 소견이란 우선 부처님의 설법을 잘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여 확립된 인생과 우주관을 말한다. 예컨대 무상·무아·고와 같은 삼법인의 법문에 입각하여 정

립된 견해를 가리킨다.

둘째 정사(正思)는 올바른 의지이다. 이는 앞의 정견에 대해서 한층 깨달아 보겠다고 일으킨 의지심에 해당한다. 마치 서울에 대해서 얘기를 들은 사람이 자신도 한번 서울에 가보겠다고 의지를 일으킨 것과 같다.

셋째 정어(正語)는 올바른 언어사용이다. 정견에 입각하여 정사를 일으킨 사람은 바른 말을 해야 한다. 거짓되고 악하고 꾸미고 이간질하는 말 대신 진실 되고 착하고 깨끗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넷째 정업(正業)은 올바른 행위이다. 수행자는 말만 진실해서는 안된다. 몸으로도 착한 업을 지어야 하는데 살생하지 아니하고 도둑질하지 아니하고 음란하지 아니하고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항상 다른 이들을 위해서 이익된 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 정명(正命)은 올바른 생활을 가리킨다.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의지 그리고 올바른 말과 행위로써 생활을 영위해 간다. 그야말로 신·구·의 세 가지 행위가 잘 갖추어진 생업을

해나가는 것이다.

여섯째 정정진(正精進)은 물러나지 않은 올바른 노력이다. 정정진은 앞의 다섯 가지 올바름과 뒤의 두 가지 올바름을 깨달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닦는 것을 가리킨다.

일곱째 정념(正念)은 올바르게 관찰하는 마음이다. 밖을 향해 일으키는 일체의 분별과 번뇌를 항상 집중적으로 관찰하여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여기서의 ‘념’은 ‘주의해서 본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작용을 관찰하는 것이다.

여덟째 정정(正定)은 올바른 집중이다. 정정은 앞의 정념을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닦아서 몰입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정은 나중에 다시 정견을 증득하게 하여 지혜를 일으키고 무명과 갈애가 소멸된 멸에 이르게 한다.


이처럼 네 진리 여덟 길은 중생이 결박을 풀고 멸을 얻는 최상의 가르침인 것이다.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8가지 실천사항을 말한다. 정견은 올바른 견해로서, 있는 그대로 보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이다. 이에 의하여 자기와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연기(緣起)의 도리를 알게 된다. 정견에 기초하여 올바른 사유가 생긴다. 나아가 이 생각에 의하여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이 행해진다. 이것은 일상생활이 정견에 기초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생활이 이루어짐을 말한다. 이들에 의하여 정념이 확립된다. 정념은 올바른 주의력, 올바른 기억으로 마음을 줄곧 올바른 상태로 유지하는 마음의 힘이다. 마지막의 정정은 정견~정념에 기초하여 실현되는 마음의 통일, 즉 올바른 선정(禪定)을 말한다. 이상의 8정도는 서로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올바른 선정에서 올바른 지혜가 생기며, 또한 정견은 올바른 지혜, 즉 정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8정도는 점진적인 수행 단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길이다.


다) 위빠사나란?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길이며, 직접 가신길이며, 가르치신 길이다.

“중생들을 정화하고 슬픔과 근심을 이기고 괴로움과 번뇌를 없애고 올바른 길을 따르며

열반을 깨닫게 하는 유일한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념처의 확립이다."

"이는 현세의 가르침이며 즉각적인 결과가 있고 와서 보라고 인도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나는(부처님께서는) 사념처법을 수행함으로서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그 많고도 다양한 참 요소들를 깨달았다."


수행법을 찾는 이들이여!!!

왜 당신은 붓다의 말씀 밖에서 찾고 있는가?

붓다께서 염처라는 유일한길을 설하시지 않았는가?


(四念處) >>


1.신념처(身念處)


"오! 고귀한 아들아  보살은 몸을 바로 보는 것을 이같이 가르쳤다. 이 몸은 오직 발,발까락,

다리,엉덩이,배,배꼽,가슴,심장,등뼈,늑골, 손,팔, 어깨,..............등의 모임일 뿐이다. 몸은 업을

통한 삶의 과정을 만들어 가는 건설자(갈망)에 의해 지어졌으며 수 십만개의 다양한 욕망과

불결함과 환상 등의 거처가 된다. 이 몸은 과거에서 온 것도 아니고 미래로 가는 것도 아니

다. 몸은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생각에서가 아니고는 과거나 미래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것은 타고난 행동이나 지각 있는 실체가 없는 텅빈 것이며, 처음 중간 끝 그 어디에도 고정

된 뿌리가 없다. 몸은 주인이 아니다. 이 몸은 내 소유라 할 것도 아니고, 그 자체의 소유도

아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신체, 그릇, 인체 등이라 부르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에 의해

태어난 이 몸은 중심도 없으며, 불분명하고 부패하고 악취나는 물건일 뿐이며, 탐욕 성냄 망

상 두려움 절망과 같은 도둑의 침입으로 망쳐지고, 충돌, 추락, 노쇠, 소멸, 파멸에 계속 노

출되어 있으며, 이 몸에는 십 억개의 각기 다른 질병이 번식하고 있다."

몸이 허망하여 제 성품이 없는 줄 알면, 물질이 그대로 공한 것인데  무엇을 나라고 하겠

는가? 온갖 법이 오직 가명뿐인지라 하나도 결정적인 실체가 없다. 경에"온갖 법이 그 본성

은 본래부터 스스로 공하다."하였다. 나의 몸이라 하는  이것은 색(지수화풍(사대) )수, 상,

행, 식이므로  낱낱이 나가 아니요, 화합함도 없으니 내외로 추궁해 보건데 물거품,아지랭이,

파초,허공꽃,허깨비와 같아서 끝내 사람이라 활 것이 없다.


2.수념처(受 念處)

"보살이 수념처를 수행할 때 그는 감각적 행복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가진다.

그는 느낌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수념처를 수행한다. 탐욕에 빠진 중생을 보고, 분노에 빠진

중생을 보고, 어리석음에 빠진 중생을 보고 이를 버리려 노력한다. 그 어떤 느낌도 모든 느

낌은 덧없다는 것을 알고, 모든 느낌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며, 느낌의 주체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모든 느낌에 집착하지 않게 되며 평화를 느낀다. 지금 나에게 괴로움이 일어났

다. 이것은 절대적이지 않고 조건적이다.  무엇에 의해 조건적인가? 바로 이 몸조차도 조건

적이다. 실재로 이 몸은 무상하고 복합적이며, 의존적으로 생겨난다. 하지만 만일 이 괴로움

이 무상하고 복합적이고, 의존적으로 생겨나는 몸에 의해  부분적으로 조건지어진 것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괴로움이 영원할 수 있겠는가? 몸과 괴로움 둘 다에 관해서 그는 무상을 바

로보고 지내며, 덧없음을 바로 보고 지내며 초연함을 바로 보고 지내며, 소멸을 바로 보고

지낸다. 


3.심념처(心念處)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살펴보았다. 탐욕스럽거나 성내거나 어리석은 것이 어떤 마음

일까? 그것은 과거의 마음인가?  현재의 마음인가?  미래의 마음인가? 과거는 이미 지났다

(끝났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의 마음에는 고정된 것이 없다.

카사파야!! 마음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안팎에서나 그 어디에서도 찾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