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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보석사와 은행나무

길따라 나선 여행

by 낮부엉이 2009. 7. 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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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사진입로

 전나무숲길

 천년된 은행나무

해설사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할만큼 오래된 나무가 더러있다.

수령 500년된 나무는 보아왔지만 1,000년 된 은행나무는 처음이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34m,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10.72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쪽이 24m, 남·북쪽이 20.7m이다. 보석사 맞은편 산자락에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에 서 있는 이 은행나무는 수고 40m의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나라나 마을에 변고가 있을 때면 울을을 낸다고 한다.

이 영험한 나무를 모시는 마을에서 해마다  대신제를 드린다고 한다.

민속적 생물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365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특히 해설사님은 겨울 눈쌓인 설경이 너무 좋다고 강조하며 가을 단풍이 든 은행나무의 정취가 아주 멋지다고 한다.

 

 

 

 

보석사 일주문

 보석사 대웅전 (충남유형문화재 143)

 

이 절은  885년(헌강왕 11)에 조구(祖丘)대사가 창건했으며, 보석사라는 이름은 절 근처에서 캔 금으로 불상을 주조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고종 때 민비가 중창했으며, 1912년 31본산의 하나가 되어 전라북도 일원에 있는 33개의 말사를 관장했다. 석동리 마을사람들 말에 의하면 현재 보석사가 있는 곳으로부터 200m 위에 있는 영천암(靈泉庵) 자리가 원래 보석사의 절터였다고 한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산신각·의선각(毅禪閣)·조사당·응향각·요사채 등이 있다.

 본래의 건물은 임진왜란당시 불 타 없어지고 이 건물은 조선후기에 다시 지어졌다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옆면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이다.

 절 입구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승장이었던 영규(靈圭)대사의 순절비가 있으며 그 옆에는 1980년에 임창순이 역술하고 이곤손이 쓴 영규대사의 선각비가 있다. 승병, 영규대사는 금산전투에서 조헌선생과 함께 전사하여 칠백의총에 묻힌분이다.

 의선각

 보석사 의선각은 대웅전 왼쪽건물이며   영규대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중봉 조헌선생의 의병과 힘을 합하여 청주성을 탈환한 후, 1592년 금산에 주둔하던 일본군과 싸우다 순직했다.

  가재가 서식하는 생태게가 살아있는 곳!

벚나무 열매 버찌가 알알이 익어가는 초하의 금산, 얼마나 청정한 곳인지 공기가 무척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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