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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바람의 빙계계곡과 오층석탑

길따라 나선 여행

by 낮부엉이 2009. 8. 1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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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빙계계곡

 

소재지 :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경북 8승의 하나로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삼복 때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 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이다. 

경상북도의 8군데 아름다운 경치 가운데 하나인 보현산 줄기 빙산  빙계계곡, 그리고 보물제 327호인 빙산 오층석탑을 둘러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계곡이라 오히려 좀 추울듯해 보이는 빙계계곡

 

 

써늘한 바람부는 가을이나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나온다는 빙계계곡,

 

 

써늘해진 아침녘 더운 김이 안개처럼 뒤덮인 빙계계곡을 다시찾고 싶다.

 

 

그 옆에 단 하나의 큰 바위 위에는 경북 팔승지일 이라고 새긴 아담한 돌비(石碑)가 자리잡고있다.

 

 정말 찬바람이 나와요! 신기해요~~ 계곡을 올라가는 길 내내 찬바람이 스며 나온다.

 작은 틈새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더위을 피하고 있다.

 

 빙계계곡의 널려있는 바위구멍에서는 한여름일수록 더욱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나온다.

이름하여 빙혈(氷穴)과 풀혈(風穴)이다.빙혈은 본시 큰 동굴이었는데 지진, 산사태등으로 밀려나면서 지금처럼 아주 작아졌다고 한다.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빙혈, 구경꾼이 너무 많아선지 석실내부엔 찬 물방울만 비처럼 딸어져 내렸다.

 

 氷穴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에 작은 방만한 석실에 사람이 10여명 가득 즐어찼는데도 써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의 열기로 석실에는 이슬이 맺혀 툭툭 떨어졌다.

 

 세종대왕때 빙혈을 지으면서 축시를 지어 올린 시문

 태을영부.......사필귀정 글귀와 암호같은 ....태을도?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구멍 혈이다.

사람이 들어가면 댓명은 웅크리고 있겠다. 써늘한 바람이 나온다. 자연이 만든 에어콘 바람이다.

땅밑에서 지상으로  화산이 형성될 때 작은 틈새로 공기가 위로 올라오면서 압력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으로 변해서 올라오는 것이라 한다.

 의성 빙산사지 오층석탑(義城 氷山持地 五層石塔)  보물 제 327호

소재지 : 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0

 

경상북도의 8군데 아름다운 경치 가운데 하나인 보현산 줄기 빙산 아래에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돌을 벽돌 크기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으로 의성탑리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모방한 것이다. 탑의 형태는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돌을 벽돌 크기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으로 의성탑리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모방한 것이다. 탑의 형태는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맨윗돌은 8개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로 탑신을 받치기 위해 괴임을 높게 얹었다. 탑신부를 보면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딴 돌로 모서리기둥을 세우고 정면에 네모진 공간을 마련해 놓았는데 이 공간은 불상 등을 모셔두는 용도로 쓰였다. 2층 이상부터 몸돌은 그 높이가 1층에 비해 반 이상 줄었으며, 5개의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4단씩이다. 지붕돌의 경사진 면은 각 5단의 층으로 이루어졌다. 정상의 머리장식부분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다.

탑의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사이로 추정된다. 의성탑리오층석탑에 비하여 격이 떨어지나 모전석탑으로서 아름다운 작품이다.

 오층석탑 감실안에 있던 금동불상을 임진왜란때 훔쳐갔으므로 그 좌대라도 이렇게 모셔 보존하였다.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던 서원.
1556년(명종 11)에 창건되었으며, 김안국(金安國)·이언적(李彦迪)·김성일(金誠一)·유성룡(柳成龍)·장현광(張顯光)의 위패를 모셨다. 1576년(선조 9)에 사액을 받았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근간에 복원되다.

 

 계곡 입구에 위치한 빙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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